
솔직히 저는 한동안 제 상태가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공부에 집중이 안 되고 의욕이 없는 날이 계속되어도 그냥 게으른 탓이라고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데, 마음이 아플 때는 왜 참기만 할까요?
내 몸이 보내는 신호, 놓치고 있지 않으신가요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하게 보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수면의 질과 식사 패턴의 변화입니다. 여기서 수면의 질이란 단순히 몇 시간을 잤느냐가 아니라, 자고 일어났을 때 실제로 회복감을 느끼는지를 의미합니다. 8시간을 채워 자더라도 계속 피곤하고 더 자고 싶다면, 이는 수면 구조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바로도 이게 꽤 정확했습니다. 충분히 잔 것 같은데 아침마다 무겁고, 밥맛이 없다가도 어떤 날은 이유 없이 폭식을 하는 패턴이 반복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라고만 생각하고 넘겼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경보 신호였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개념이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의 불균형입니다. 여기서 신경전달물질이란 뇌 안에서 감정, 수면, 식욕 등을 조절하는 화학 물질을 통칭하는 용어로,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대표적입니다. 이 물질들의 분비가 무너지면 별다른 외부 원인 없이도 우울감이나 불안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힘든 이유를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쪽을 먼저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정신건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경험하는 성인의 상당수가 첫 증상 발현 후 수년이 지나서야 전문가를 찾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증상이 있어도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정도로 병원을 가도 되나"라는 막연한 기준 부재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병원에 가면 될까요?
저는 이 기준이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느꼈습니다. 병원 방문을 고려해볼 만한 신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평소보다 수면의 질이 눈에 띄게 저하되었을 때
- 식사량이 갑자기 줄거나 반대로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늘었을 때
- 예전에는 즐기던 활동에 흥미를 잃었을 때
-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거나 감정 조절이 어렵다고 느낄 때
- 죽음이나 자해에 대한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를 때
마지막 항목은 특히 시급하게 전문가를 찾아야 하는 경우입니다. 이 부분만큼은 망설임 없이 바로 병원을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과거의 나와 비교하세요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보다 훨씬 힘든 상황에서도 잘 버티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이 정도로 힘들다고 하면 유난인가." 저는 이 생각을 꽤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자책했고, 원인을 찾으려는 과정 자체가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졌습니다.
그런데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실제로 권하는 기준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닙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한 달 전에는 퇴근 후 가볍게 운동도 하고 청소도 했는데, 요즘은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누워만 있다면, 그것 자체가 변화의 신호입니다. 주말에 친구 만나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 연락을 끊고 방에만 있게 되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습니다. ADHD란 주의력을 유지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적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경발달장애로, 어린 시절의 환경이나 부모의 양육 방식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스스로를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하지, 의지가 약한 건가"라고 탓하면서 수년을 보내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이 자책의 루프가 굉장히 소모적입니다. 원인을 억지로 찾으려 할수록 작은 사건들에 집착하게 되고, 그게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만들어냅니다.
인지행동치료(CBT)는 이처럼 잘못된 사고 패턴을 교정하는 데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인지행동치료란 자신의 생각(인지)이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심리치료 방법입니다. 약물치료와 병행할 경우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치료에서 상당한 효과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병원을 처음 찾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어떤 증상 때문에 힘든지, 그 중에서 지금 당장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두세 가지만 정리해서 가시면 됩니다. 말을 잘해야 한다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전문가가 질문을 이끌어가며 함께 정리해줍니다. 맞지 않는 병원이 있다면 다른 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치료를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입니다.
정신과 치료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처음에는 과장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씻는 것도 힘들어하던 사람이 회사를 다니면서 팀장 욕을 하게 되는 것, 그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힘들다면 원인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언제 병원을 가야 하는지 기준이 모호하게 느껴진다면, 지금의 나와 한 달 전의 나를 비교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